현대 독일 프랑스 철학사 2
도입
철학은 단편적 지식이 아니다. 철학은 일종의 역사적 의식의 흐름이다. 우연히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철학은 없다. 현대 유럽 철학도 역사와 단절된 돌연변이가 아니다. 2500년의 서양 철학의 역사를 이리저리 재단하며 현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현대 유럽 철학에는 과거의 발차취가 생생히 살아서 돌아다닌다. 그래서 철학사에 밝은 사람은 현대 철학에 무난히 입성할 수 있다. 역으로 보면, 현대 철학에 익숙해지면, 과거 철학적 사유에도 별 어려움 없이 진입할 수 있다. 속된 말로, 그놈이 그놈인 것이다.
특히 역사적 의식의 흐름이라는 문구에서 역사라는 단어를 빼고, 의식의 흐름이라는 용어에 주목하기 바란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사실 판단보다 의식의 흐름으로 겹겹이 축적된 관념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흐름을 놓치면, 전체 내용이 온통 횡설수설이 된다.
앞서 우리는 현대 유럽 철학을 여분의 철학 혹은 잉여의 반란이라고 불렀다. 간단히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철학이라는 행성에 진리와 이성이라는 초월적 존재가 살았다. 그 아래 실체, 지혜, 자유, 본질 등 귀족들이 군기 및 질서를 잡고 있었다. 경험, 본능, 생존 기술 등은 썩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면 법이다.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친 후 운명의 여신이 드디어 자비의 미소를 지었을 때, 미천한 것들의 작은 몸짓이 존재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하여튼 잉여가 반란을 일으켜봤자 무슨 대단한 사건이었을까 의문을 품을 수 있겠는데, 혁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보다 그 파장이 컸다. 그래서 현대 유럽 철학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유산으로 남긴 것이다. 사실 지금은 전통 철학의 정체성을 위협할 정도로 그 반란의 폭이 넓어졌고, 그 심연도 깊어졌다.
첫 번째 걸음: 본질과 현상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벼락 명성을 얻으려면, 예부터 전해오는 비법이 있다. 해당 분야에서 당대 최고에 도전장을 던지라는 조언이다. 결과는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쪽박을 차거나, 아니면 원하는 것을 얻거나. 현대 유럽 철학은 후자에 해당한다.
전통적으로 철학의 최고봉에는 진리가 앉아 있었다. 그 진리의 오른쪽에 서 있는 비서실장 격이 본질이다. 물론 둘의 관계는 조금은 특별하다. 진리와 본질은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서로의 안위를 살폈다. 그래서 적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양자가 동급 취급을 받았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수천 년간 진리와 본질에 세금을 바치며 온갖 굴욕을 견뎌야 했던 천민계층은 누구였을까? 이미 본질이라는 용어에 그 비밀이 감춰져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본질이란 ‘사물을 그 자체가 되도록 하는 고유한 성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겉모습보다 그 내면을 살펴야 한다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말만 그런가? 하여튼 말이라도 그렇게 한다.
이러한 생각의 기원은 이미 철학의 어원에도 맞닿아 있다. 필로소피아, 철학이라는 단어는 ‘사랑하다’는 필로스와 ‘지혜’라는 소피아가 연결된 합성어이다. 설명해 보면,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인 셈이다. 지혜란 변화무쌍한 현상을 훌쩍 넘어서 내면에 도도히 흐르는 본질의 학문이 되겠다.
이렇게 진리와 본질의 역사는 현상을 희생제물로 삼아 자신의 정체성을 키워나가게 된다. 진리는 자명한 것이다. 마치 1+1이 2인 것처럼. 영원하고 불변한다. 영원을 추구하는 진리는 학문의 기본이 되었고, 인간은 영원을 사랑하는 존재로 미화되었다. 영원에 감히 대항하는 어떠한 것도 무엄하고 방자한 것으로 처벌되었다. 그 반대편에는 헛되고, 무상하고, 덧없고, 온갖 무엄하고 불경한 단어가 등장한다.
직접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쌩땍쥐베리가 우리의 맥락에 잘 들어맞는 문장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 <어린왕자>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보자.
“참, 내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사막여우와 어린 왕자가 나눈 대화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뭔가 있어 보인다. <어린왕자>에서 인용되는 구절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이다. 내용 자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인다. 마음으로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법이다.
문제는 과도한 해석에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일까? 진리와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심오한 정신의 눈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그 정체를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리의 이면에 눈에 보이는 변화와 우연, 즉 현상을 미천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는 것이 문제다. 현상에 대한 편견은 매우 오랫동안 철학사에 유전되었다. 마치 주홍 글씨처럼.
현상은 진리와는 너무도 다르게 변화와 우연을 상징한다. 그래서 항상성과 필연을 상징하는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현상을 적대시할 수밖에 없었다. 진리의 임무란 항상 변하지 않는 실체를 추구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2600년 서양 철학사의 중심부를 관통하였다.
형이상학이 제일 철학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ta meta ta physica’, 즉 자연학의 뒤에 놓였다는 유래로 형이상학을 설명한다. 그러나 메타피직, 글자 그대로 형이상학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을 초월한다는 의미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형이상학의 과제는 절대 변하지 않는 사물의 진리, 즉 본질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가?
그런데 명심해야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당연하다고 믿는 것뿐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하고, 지식의 권력 지형이 달라지면, 판도 엎어 버리고 위아래도 없고, 이른바 뉴노멀이 등장하는 법이다. 특히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면 할수록 적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언젠가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형이상학의 운명이 그러하다.
오랫동안 철학의 권좌를 지켰던 형이상학, 그렇다고 그 진리의 여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칠고 험난했다는 표현이 어울려 보인다. 그만큼 게릴라전으로 버텼던 저항 세력이 많았던 탓이다. 형이상학은 회유보다는 강경책을 선호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은 이데아, 본질, 실체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경험, 변화, 생성, 우연을 억압했다.
중세 종교의 시대는 가히 암흑의 시대였다. 형이상학이 종교의 시녀로서 둔갑하며 이론의 영역을 넘어 실제 권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손에 쥐면 누구나 무서울 게 없는 법이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다.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면 그만인 것이다. 허튼짓하는 놈이 나타나면, 이단으로 찍어서 화형에 처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이렇게 무시무시한 수단을 동원해서야 어떻게 당연하고 자명하다는 수식어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과연 스멀스멀 저항 세력이 생기더니, 급기야 자발적 화형으로 시대를 비판하는 철학자도 등장하게 된다. 그렇게 중세는 그 지속시간에 비해 허망하게 막을 내린다.
사실 지금도 형이상학적 인간 유형이 있다. 지키려는 신념이 절대적일 만큼 강한 유형을 말한다. 이들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기에 결국 강압적인 수단을 쓰게 된다. 마음에 품은 진리가 강하면 강할수록 예외적인 것에 강경하게 대응한다. 전통적 형이상학은 대체로 선과 악의 기준을 나누는데 무차별적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은 조심해야 한다. 절대 반지를 만들어내는 최적화된 수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형이상학의 절대 반지는 중세에만 통용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형이상학적인지도 모른다. 진리의 추구는 근대에 이르러 인본주의라는 또 다른 절대 반지를 탄생시킨다.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근대성이 진리의 수호자가 된다. 근대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숱한 이념이 난무하는 정치적 인간의 춘추전국시대였다. 1인 1이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념은 허위의식을 의미하는 이데올로기로 불린다. 마냥 거짓된 믿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특징이 이념적 행위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데이비스 이스턴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란 ‘일련의 집단으로 하여금 과거를 해석하고 현재를 설명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련 신념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이념에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 민주주의와 국가 사회주의, 민족주의와 다문화, 자연주의와 인간주의, 그 외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숱한 주의, 주장이 인본주의의 우산 아래 세상에 명함을 내밀게 된다. 세상의 주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지닌 이념이 그의 행동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 인간은 명목상 자유인이었을 뿐 실제로는 이념의 노예였다. 지금은 어떨까?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아니면 무언가에 의해 조종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만약 빅데이터가 우리의 미래의 행동방식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수준까지 도달한다면, 우연이란 그저 정확하게 계산된 필연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쨌든 현대 유럽 철학은 진리와 본질이 선택했던 이 단순한 여정에 거리두기를 시작한다. 뻔한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은 삶을 퍽 지루하게 만든다. 물론 과거와 전적으로 결별을 선언한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진리와 본질이 지닌 절대 반지의 유혹이 너무 강력하였다. 다만 의구심을 품었을 뿐이다.
진리를 걸어던 형이상학의 여정은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면, 일종의 정복 전쟁과도 같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극한 대립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한다. 제삼자의 눈에서 보면, 이 문제는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이해관계일 뿐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입장에서는 양보할 수 없는 정치적 문제가 된다. 러시아는 나토와 국경을 맞댈 수 없는 처지이고,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기대어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자구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누가 옳은 것일까? 각자 자신의 입장이 곧 진리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진리라는 것이 이러하다. 진리는 단 한 번도 하나가 된 적이 없었다. 하나가 되기 위해 부단히 투쟁해 왔을 뿐이다. 그 오랜 역사에서 악이 생기고, 타자도 등장하며, 불순하고 예외적인 것이 탄생하였다. 진리의 발걸음은 이러한 방자한 모든 것들을 제거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정당화의 기술이었다.
두 번째 걸음: 본질과 실존
현대 유럽 철학의 두 번째 발걸음도 본질과 연관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사태를 다시 보조자료로 소환해 보자.
러시아는 나름 자신의 군사적 행동에 대해 충분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원래’우크라이나는 구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그래서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었다. 더욱이 연방 전체를 먹여 살릴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곡창 지대였고,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천혜의 지대이다. 역사적으로 독립 국가의 경험이 짧은 데다, 오랫동안 구소련의 정치체제에 묶여 있던 탓에 친 러시아계 인구도 상당하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붙어버리면, 아무리 양보해도 구소련의 진리 역할을 했던 러시아에는 아픈 손가락이 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또 다르다. 태생부터 주변 강국에 의해 국토 대부분이 점령되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 된 뒤로도 그저 착취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스탈린 시대, 그의 강제 곡물징집 정책으로 5백만 명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제일 많은 희생자를 낸 곳도 우크라이나였다. 대략 천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하니 독일과 전쟁을 한 나라가 소련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속된 말로 우크라이나는 ‘도대체 너희가 우리에게 해준 것이 뭐냐’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는 형국이다. 원래부터 너희는 우리에게 그저 빼먹을 것만 생각했지 않았냐고 삿대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로 따지면,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나 외교적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원래’로 따지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인이었고, 원래로 따지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숱한 침략자 중 하나였다. 이 ‘원래’가 바로 본질이자 갈등의 원흉이다.
그럼 외교적 해법은 전혀 불가능한 것일까? 외교는 현재를 지향한다. 그러나 ‘원래’는 과거에 묶여 있다. 이 과거를 잠시 내려놓아야, 외교적 해법이 열린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원래’가 아니라,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다. 러시아는 나토와의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완충지대가 필요하고, 우크라이나는 독립국으로서 자주권을 획득해야 한다. 이해관계에서 조금씩 양보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물론 이 ‘원래’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무의식 속에 숨어서 갈등이 생길 때마다 틈만 나면 좀비처럼 되살아나 현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지금과 여기’의 중요성을 다시 소환해야 된다.
현대 유럽 철학은 철학사의 ‘원래’에서 ‘지금과 여기’를 떼어낸 전형적인 사례이다. 특히 개인의 삶을 두고 과거와 현재의 갈등을 봉함한다. 나는 누구일까? 우리가 이 질문에 답변하려면, ‘원래’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이름은, 졸업한 학교는, 직업은, 가족 구성은, 친구 관계는 기타 대부분 우리가 이력서에 써넣을 수 있는 항목이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의 꿈과 미래의 비전도 사실은 과거와 연동되어 있다. 이미 지나온 발자취에서 그 근거를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 무언가를 기획하고 그 기획을 자양분으로 삼아 삶의 생동감을 느낀다.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불행도 실은 현재형인 것이다. 우울은 정말 참기 힘든 정서적 실존인데, 그조차도 현재형에서만 제 힘을 발휘한다. 과거에 우울했던 기억은 현재 트라우마로 남아있지 않는 한, 쉽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안줏거리로 요리할 수 있다. 흔히 연예인들이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그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행복과 아직 오지 않은 기쁨은 그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화석화된 의식일 뿐이다. 행복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나’를 사로잡는 정서적 격정을 말한다. 그래서 행복은 강렬하고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현재를 우리는 과소평가는 경향이 있다. 바로 ‘원래’ 혹은 ‘본래’에 연동된 과거에 집착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대비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기존 사회 시스템에 정박한 의식이 우리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가이자 철학자였던 까뮈는 이러한 삶의 현상을 ‘부조리’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과거에서 찾으려는 전통과 결별한다. 인간에게 본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현재 이 부조리한 감정을 평생 운명처럼 지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에 있다.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의 운명처럼 말이다. 시지프스는 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산 정상으로 돌을 굴려 올리는 형벌에 처해진다. 그 형벌의 무서움은 돌을 굴리는 행위 자체에 있지 않았다. 돌을 굴리는 행동을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무의미함에 있었다. 올려놓은 돌이 다시 밑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허망하고 헛된 것을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것만큼 잔인한 형벌은 없을 것이다. 까뮈는 시지프스의 이 무의미한 시간을 인간의 삶에 빗대어 설명했다.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로 흩어지는 참을 수 없는 이 가벼움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란 지극히 덧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까뮈는 이 허망함에서 삶의 무의미와 동시에 역동성을 발견한다. 무의미하기 때문에 한편으로 우리가 삶을 살아낼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어려운 논리인가?
실존주의는 마치 코로나처럼 한 시대를 강타했던 사상적 열풍이었다. 특히 1차, 2차 대전을 겪으며 휴머니즘이 극단적 도전에 직면했을 때, 유럽의 지성을 위로했다. 하지만 위로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 기세만큼이나 가파르게 소멸해 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 사상사에 적지 않은 균열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프로이드의 무의식처럼 현대 철학의 무의식에는 실존주의의 향수가 진하게 느껴진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 칼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 프로이드의 무의식, 현대 사상에 획을 그은 3대 이론이다. 여기에 딱 하나만 덧붙이라면, 바로 실존이라는 개념이 되겠다. 오늘날 실존은 개인보다 더 의미 있는 단어로 인간을 대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직 인간에게만 실존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하이데거를 다룰 때 다시 이 용어를 소환할 것이다. 오늘은 한 가지 포인트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인간도 자연의 한 조각이다. 생명체의 본능을 동물과 공유한다. 심지어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98.7%가 동일하다고 한다. 물론 그 1% 남짓 되는 차이가 절대적 변수가 되어서 인간을 생태계를 지배하는 지적 생명체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단순히 지능만의 차이일까?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그저 힘의 차이에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폭군의 특권일 뿐이다. 조금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조건을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에는 특별한 조건이 붙어있다. 우리는 그저 이해관계만을 따져 본능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사랑으로 산다’는 답변은 일단 제쳐두기로 한다. 생태계 내에서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본능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고, ‘인간은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두 질문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첫 번째 질문은 대상에 대한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누구에 대한 질문이다. 개인은 사물이 아니라, 시간을 향해 열려 있는 누구인 것이다. 그 누구를 우리는 대상의 속성으로 수렴될 수 없는‘실존’이라고 부른다.
실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과거에 연계된 본질보다 더 무거울 수도 있다.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운명으로 삼아 어깨에 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프랑스 실존주의 사상가 사르트르가 쓴 책의 제목이다.
세 번째 걸음: 근대성에 대한 비판
현대 유럽 철학의 마지막 발걸음은 근대성 자체로 향한다. 키워드는 당연코 비판이다. 즉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되겠다. 이는 앞선 발걸음을 정리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우리는 앞서 근대성의 특징으로 얼핏 이념의 춘추전국 시대를 언급하였다. 칭찬이 아니라 혹평을 한 것이다. 그런데 춘추전국 시대란 단순히 혼란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와 생성,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대부분의 유명한 인물들이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자.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근대성에는 매우 풀기 어려운 숙제가 있었다. 인류의 보배가 태어나기도 했지만, 세상을 집어 삼킬 수 있는 괴물을 낳기도 하였다. 그런데 날 때부터 괴물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도 괴물로 성장했을 것이다. 현대 유럽 철학의 비판 정신은 근대성에 잠재한 괴물의 성향에 주목했다.
철학사에서 비판이라는 단어는 원래 칸트의 공적이다. 그것도 그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종대왕 하면, 한글이 떠오르듯, 칸트에게 비판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간단하게만 설명해 보겠다.
비판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듯, 그저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는 시도에 그치지 않는다. 칸트에 따르면, 비판이란 생각의 경계를 확인하여 그 사용처를 명확히 하는 데 있다. 칸트의 시대적 공헌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인과법칙을 통해 증명된 사실은 대체로 안다고 할 수 있다. 원인과 결과가 눈에 보이니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 정의, 평등 등은 어떨까? 그것은 앎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와 정의, 평등을 알 수 없다. 다만 신념으로 삼아서 지키는 것 뿐이다.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을 잘 구별해야 합리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이렇듯 비판이란 인간의 앎과 행위, 판단, 희망 등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올바른 이성 사용 설명서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유럽 철학에서 사용하는 비판은 칸트의 비판 정신을 계승한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끌어 올린다. 경계짓기를 넘어 사태를 자세하게 폭로하는 행위로 나아간다. 대체 무엇을 폭로하는 것일까? 권력형 게이트, 미투, 명단 폭로, 작심 폭로, 실체 폭로, 흑역사 폭로, 여러 가지 사용법이 있다. 이 가운데 실체 폭로가 의미상 제일 가까운 듯 하다.
우리가 실제 수업에서 사용할 계몽에 대한 비판을 간단한 예로 들어보자. 계몽은 근대성의 심장부이다. 이념의 이념, 꽃 중의 꽃인 셈이다. 본래의 뜻은 ‘어둠 속에서 밝은 곳으로 나옴’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현실판으로 부활한 케이스가 되겠다. 그런데 무엇을 비판한다는 것일까?
계몽은 가치판단의 선명함을 특징으로 한다. 어두운 동굴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니, 누구도 부정하거나, 반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 행여 반대하는 자는 역사의 반역자로 몰리는 수모를 당한다. 원래 이념의 성향이 그렇다. 반동을 색출해 내는 일이 이념이다. 이편과 저편이 뚜렷하고, 선과 악의 기준을 나누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문제는 계몽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악용과 폭력에 있다. 근대 이후 계몽의 형식적 성격의 띤 사회 운동은 항상 이러한 폭력적 성향을 동반하였다. 왜냐하면, 목적지가 워낙 선명하고, 그곳으로 향하는 효율적인 길을 찾아야 했기에 장애 요소의 제거를 역사적 사명으로 삼은 것이다. 종종 이러한 혁명 혹은 혁신은 사회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 그 선명함으로 인해 인간은 생태계에서 가장 잔인한 존재의 화신이 되기도 했다.
현대 유럽 철학은 계몽의 정신에 드리운 폭력적 성향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하였다.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진 것이 아니다. 이념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선택한 모든 종류의 인간적 행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그 역사적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추적한 것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비판 정신이 거리두기 그 자체임을 인식하게 된다.
마무리: 익숙함에서 새로움으로
다음은 르네 마그리트 그림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유명한 그림이다. 근데 왜 유명한지 모르겠다. 심지어 어처구니가 없다. 누가 봐도 파이프가 확실한데 파이프가 아니란다. 대체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현대 초현실주의가 일단 말이 안 되는 것을 모티브로 삼아야 한다는 인상만큼은 확실하게 심어 주었다.
꼭 활용처를 생각해 본다면, 현대 유럽 철학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기존에 우리가 당연하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모든 것, 선과 악의 기준,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대하는 태도, 가까운 것과 먼 것의 관계, 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의심과 회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모티브를 준 것이다. 왜 그래야 할까? 그때야 비로소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엎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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