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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초상

정치 철학의 빈곤

by 지렛대 2023.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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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의 빈곤

 

세계화의 붕괴와 함께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한 무한성장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강대국 간 갈등의 고조,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경제 불안, 인공 지능의 변혁적 대두, 극심한 환경 위기 등 국제사회는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시름 하고 있다.

한반도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는 시대에 하필이면 우리에게는 전략적 통찰력과 시대적 유연성을 모두 갖춘 유능한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시대적 도전이 현재 한국 사회에는 특히 매우 불리한 정황이다. 2023년 현재는 우리에게 ‘운수 좋은 날’이 아니다.

 

 

 

두 갈래 길 앞에서

한국 정치가 선택한 전략은 미국 및 일본과 삼자 동맹을 확고히 한 일이었다. 힘에 의한 외교에 편승한 결과이다. 얼핏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강화하고 지역 안정을 보장하려는 신중한 선택으로 읽힌다. 그러나 정치적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가볍기 짝이 없다. 무성한 풀도 없고 이미 많은 사람이 지나간 식상한 길일 뿐이다. 누가 그 자리에 앉아도 내릴 수 있는 별 매력 없는 선택이라는 의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의 주요 정치세력은 지지층을 결집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 이념논쟁을 활용하기 시작한다. 이념논쟁을 포함한 정치적 경쟁은 민주적 거버넌스의 필수적인 측면이다. 경쟁이 치열한 정치 환경에서 정치인은 이념적 논쟁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각종 이념은 경쟁자와 차별화하는 최적화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이념 갈등은 그저 특정 유권자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포퓰리즘과 양극화에 의존하는 무능한 정치 행위로만 보인다.

 

다른 길이 있냐고? 물론이다. 길은 항상 두 갈래로 나 있다. 선택하지 않은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을 뿐이다. 이 길은 유연함과 용기를 갖춘 정치인만이 걸을 수 있다. 힘을 통한 외교에 대한 대안이 곧 정치이다. 갈등을 해결하고, 합의에 도달하고, 공통점을 찾기 위해 토론에 참여하는 일은 서로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동맹국 간의 소통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에는 공식 회담, 평화 협상, 분쟁 해결을 위한 외교 채널이 포함된다. 이 협상 테이블에는 부하나 동맹국만 앉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는 조폭의 세계가 아니다. 그 자리에는 국내 혹은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 권력, 통제권을 놓고 갈등하거나 국경 분쟁에서 지정학적 분쟁에 이르기까지 극한 갈등에 연루된 국가의 정치인들이 언제나 앉을 수 있다.

 

현재 한국의 리더십은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전혀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다. 정치인의 무능과 무지한 확신은 화를 부른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동전의 양면임을 인지하지 못하면, 온갖 인지적 편향에 집착하게 된다. 장기적인 안정보다 단기적인 이익에 목을 매거나, 외부 동맹에 광범위하게 의존하면서 국제 역학 변화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과 취약성에 노출되기도 한다. 결국, 내부 분열을 악화시키고 외교 관계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크다.

 


 

It's not his fault.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은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 등 강대국들이 얽힌 패권추구와 블록화를 특징으로 하는 국제 갈등이 점증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국내 정치 상황은 책임 있는 통치, 결집, 그리고 서로 다른 정치세력 간의 존중하는 대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재의 리더는 이러한 복잡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응하는데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선출된 리더는 국내 통합 및 책임 있는 거버넌스와 주변국과 전략적 동맹 추구의 균형과 씨름하고 있다기보다 그냥 무능해 보인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를 마냥 비난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긴급한 현안을 해결할 수 없는 정치인의 무능력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정권의 교체를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에게 유죄를 물을 수 없다. 현 리더의 무능함에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너무나 많다. 일차적으로 그에게는 정치적 유연성이 부재하다. 변화하는 국제 상황이나 국내 여론에 대응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은 정치인의 귀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선과 악, 그것도 제도적 틀과 규칙 내에서 옮고 그름만을 한시적으로 경험한 관료에게 정치적 유연성을 수용하라는 요구는 가혹한 처사이다. 그는 확립된 절차와 프로토콜을 준수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딱 거기까지이다. 이는 안정성에 대한 사고방식과 급격한 변화에 대한 저항을 만들어 정치적 유연성에 필요한 급속한 변화를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무엇보다 관료적 정체성은 오류를 최소화하고 확립된 규정을 준수하는 일을 담당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위험 회피 성향을 띤다. 정치 분야에서 유연성에는 계산된 위험을 감수하고 명확한 결과가 없을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포함된다. 특히 불확실성 앞에서의 결정은 더욱 그러하다. 위험 회피 성향이 체질화된 사람에게 이러한 유연성은 직업적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관료는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춘 국가 자산이다. 그러나 관료적 마인드에 포획되면, 정치인이 직면한 다양한 과제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 다면적이고 복잡한 정책 문제는 극심한 압박과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심리적으로 익숙한 것에 손을 내미는 ‘벼랑 끝’ 전술을 말한다. 유독 이번 정권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신중한 숙고보다 즉각적인 조치가 우선시된 이유를 우리는 이러한 심리적 도피처에서 찾는다. 대통령의 지시 사항으로 ‘즉각 조치’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등장했는지 정교하게 세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선택이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심리적 절박감에서 온 행위는 심실 미약에 따른 감경 사유이다.

 


 

돌아보는 시간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는 자신의 에세이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책임의 정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정치인도 개인적인 가치관이 있을 수 있지만, 더 넓은 공익을 위해 개인적 신념이 정책 결정을 지시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최소한 책임의 정치를 방해하지 않도록 가만히 있거나 주위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한다. 협치와 타협은 책임의 정치로 진입하는 첫 관문이다.

책임의 정치에는 경험이 풍부한 시민과 정치세력이 거버넌스에 참여하고 건설적인 담론과 타협의 문화를 조성함으로써 리더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다. 무능과 막무가내가 절묘하게 엮여서 유권자의 실존적 선택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 현명한 국민이라면, 비난에 앞서 그 책임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이다. ChatGPT에게 물어보았다.

 

질문: 선출직 공무원의 행동, 특히 무능하거나 막무가내로 행동할 때 유권자가 책임을 공유하는 것은 건전한 민주주의 시스템의 중요한 측면이다. 하지만 그 책임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답변: 유권자는 자신의 선거 선택의 장기적인 결과를 신중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는 향후 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투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고 단기 공약보다는 후보자의 자격과 성격에 초점을 맞추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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